역사 속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한 무리의 사람들,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요? 식민지 개척의 꿈과 함께 시작된 비극,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은 로아노크 식민지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탐험해 보겠습니다.
1587년, 잉글랜드는 북미 대륙에 영구적인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월터 롤리 경의 후원 아래 약 115명의 정착민들이 존 화이트의 지도하에 현재의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에 위치한 로아노크 섬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3년 후, 보급품을 가지고 돌아온 화이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텅 빈 정착지와 'Croatoan'이라는 단 하나의 단서뿐이었습니다. 로아노크 식민지의 실종 사건은 잉글랜드의 신세계 진출 역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잉글랜드의 북미 식민지 개척 야망과 로아노크 섬
16세기 후반,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뒤를 이어 북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국력을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월터 롤리 경은 이러한 노력의 선두에 섰으며, 로아노크 섬은 그의 식민지 개척 시도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로아노크 섬에는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토착민과의 갈등, 보급 부족 등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존 화이트의 1587년 탐험대는 이전의 실패를 바탕으로 더욱 체계적인 준비를 갖추고 새로운 시작을 꿈꿨습니다.
2. 존 화이트의 귀환과 사라진 식민지
식민지 건설 초기부터 식량과 보급품 부족에 직면한 존 화이트는 정착민들의 요청에 따라 상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1587년 말 잉글랜드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당시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인해 모든 자원을 전쟁에 집중해야 했고, 화이트는 약 3년이 지난 1590년에야 로아노크 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섬에 도착했을 때, 정착지는 텅 비어 있었고, 집들은 허물어져 있었으며, 어떠한 생존자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 남겨진 단서, 'Croatoan'의 의미
정착지에서 발견된 유일한 단서는 두 곳에서 발견된 단어였습니다. 하나는 정착지를 둘러싼 울타리 기둥에 새겨진 'Croatoan'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무에 새겨진 'Cro'였습니다. 화이트는 떠나기 전 정착민들에게 위험에 처했을 경우 십자가 표시를 남기고, 이동할 경우에는 목적지를 표시해 달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십자가 표시는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화이트는 정착민들이 약속대로 크로아톤 섬으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크로아톤 섬은 로아노크 섬에서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그곳에는 잉글랜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크로아톤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4.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다양한 이론들
존 화이트는 크로아톤 섬으로 수색대를 보내려 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색 시도가 있었지만, 로아노크 식민지 주민들의 행방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론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크로아톤 부족과의 통합: 정착민들이 크로아톤 부족과 평화롭게 통합되어 살았을 가능성입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크로아톤 부족의 문화나 유물에서 잉글랜드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찾기도 합니다.
- 다른 토착 부족과의 이동 및 통합: 크로아톤 부족 외에 다른 우호적인 토착 부족과 함께 내륙으로 이동하여 그들의 공동체에 흡수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 기근과 질병: 식량 부족과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인해 정착민들이 모두 사망했을 가능성입니다. 초기 식민지 개척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 스페인과의 충돌: 당시 잉글랜드와 스페인은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스페인 군대가 로아노크 섬을 공격하여 정착민들을 제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자연재해: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정착지가 파괴되고 주민들이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5. 끝나지 않은 미스터리, 로아노크는 영원히 '잃어버린 식민지'로
수세기 동안 로아노크 식민지의 실종 사건은 수많은 연구와 탐사를 불러일으켰지만, 명확한 해답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잃어버린 식민지'(The Lost Colony)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로아노크 섬의 이야기는 미국 초기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식민지 개척의 어려움과 예측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